2009년 즈음부터 꽤 화두가 된 공정무역 커피.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잔 값도 안되는 적은 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최소한 그들이 일한 만큼의 댓가는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윤리적 사회 활동인데, 이게 생각만큼 착한 일은 아니라는 보고가 많은 자료로 드러나고 있다."커피의 정치학"이라던가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배웠다" 라던가 하는 자본주의와 기업들의 책임을 다룬 책들을 보면 이런 공정무역에 대한 허와 실을 저자들이 발로 뛴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일단 왜 공정무역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부터 생각해 보면, 본래 커피열매라는 것은 열대 우림 기후에서 커피나무는 물론 다양한 다른 품종의 나무들과 함께 자라나면서 재배해야 하는 것인데 전세계적인 소비추세에 따라 커피 플랜테이션 기법으로 재배하게 됨으로 자
2~3년 전 쯤부터 생활의 일부가 된 SNS. 처음엔 온라인 인맥들을 만드는 재미, 그리고 여러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고 공유하는 재미들이 있었고 그런 재미들을 경험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나 자신을 어떻게 보이면 좋을까란 고민도 했지요. 사실 당시엔 그리 심각한? 진지한 고민은 아니였고 그저 어떻게 나를 남들에게 표현하면 좋을까?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어떤 나의 일상이나 생각들을 공유하면 좋을까란 다소 가벼운 고민이었다란 생각이 듭니다. SNS는 참 대단한 거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여러 회의도 남겼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온라인 서비스이지만 결국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는 장이다보니 가까이 할 수록 보다 더 알수록 실망스러운 경험도 많았죠. 때문에 나 자신 역시 누군가에겐 처음과 다르게 점점 실망스러운 사람, 뭐
오늘 문득 집에 오는 길에 든 생각. 미국소 수입 그렇게 반대하던 사람들은 미국소 절대 안먹는지, SSM이나 대형마트들 동네 상권 망하게 한다면서 반대하던 사람들은 홈플러스나 이마트 GS마트 이런데 한번도 안가는지. 반대하던 사람들이 부자라서 미국소 아니라도 가격에 상관없이 좀 더 비싼 고기 먹어도 되고 그냥 비싼 가격에 동네에서 불편하게 물건 사도 상관없는 사람들은 분명 아닐 것이다. 난 이런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낀다. 정작 시장 경제 체제로 인해 보다 가격적으로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는 수혜를 누리는 건 잘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렇게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대부분의 "중서민층" 들이기 때문이다. 개방 시장 경제로 인해 수출산업에 있는 분야나 내수 경쟁력이 확고한 산업이라면 이득이거나 별 상관없겠지만 가격경쟁
요즘 트위터나 페북등을 보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라는 말이 유행하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거 같다. 나 역시 어느정도는 공감을 하는 부분이다. 그저 이기적이며 평범한 보편적 사람이기에. 허나 저 말이 나타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 발언의 심리적 저변에는 나와 상대라는 관계적 지위가 평등함이 아닌 상하지위로 나타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호의를 더 이상 특정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라는 상징성도 내포하고 있다. 호의란 남을 좋게 생각하여 친절한 마음을 베푸는 것이란 의미다. 권리란 어떤 이가 누려야 마땅한 이득을 말한다. 즉, 둘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속성의 차이가 있다. 호의는 이타적인 마음에서 발현되는 것이라면 권리란 인간이 당연히 누
조금 있으면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바로 무상급식 시행 방법 여부에 대한 투표이다. 단순히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 투표는 아니다. * 전면적으로 실시할 것인지 : 소득 구분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 단계적으로 실시할 것인지 :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요즘 대부분의 투표 불참 혹은 오시장에 대한 반대 의견들을 보면 무상급식이란 포인트에 중점을 두지 않고 그저 오세훈의 과거 이력과 주민투표의 적법여부에 초점을 맞춰가며 논점을 다른식으로 이끌고 있다. 물론 오시장이 주도하는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 시행이 주민투표법에 저촉되는 부분도 있어보인다. (주민투표법 제7조 제2항 제1호와 제3호) 하지만
꿈인지 현실인지 확인하고자 볼을 꼬집는 행위는 사실 무의미 하다. 만약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 진짜 꿈일 경우, 볼을 꼬집는 행위는 실제 우리의 몸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닌, 꿈 속에서의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볼을 꼬집는 것으로 꿈을 깨지는 못한다. 현상 유지라는 것이다.또한 현실일 경우에도, 볼을 꼬집어 봤자 그것은 (사실 현실이니) 깨는 과정을 느끼지 못하므로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 지을 수 있는 행위로써의 의미가 상실된다. 다시 말해 직면한 상황이 실제로 꿈이든 현실이든, 그 상황에서 꼬집는 행위로써 경계를 구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꿈일 경우에도 꼬집어도 꿈을 유지하니 본인은 그것이 현실이라 판단할 것이며, 실제로 현실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니 본인은 현실이라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현실이
난 어릴 적부터 레어한 것을 좋아했다. 국딩 2년 부터 시작한 PC통신 BBS를 접속하기 위해, "새롬 데이타맨"이나 "이야기"란 에물레이터가 보편화 될 때, 난 "잠들지 않는 시간" 이라는 에물레이터를 썼으며 핑클에서도 남들은 안좋아하는 이진을 좋아했고 매킨토시가 지금만큼 보편화 되기 이전(정확히는 Intel칩셋을 차용한 이후)부터 사용해 온 것등이...
어제 문득 누군가가 던진 "결혼이란 왜 해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생각에 대해 예전에 남긴 메모가 있어 올려본다. 참고로 이 글은 혼인 제도로 인한 그 이후의 가정에 대한 국가적 혜택과 불이익에 대해서는 맥락을 달리한다. 원론적인 접근에 대한 사색을 즐겨하는 나로썬 결혼이란 제도가 왜 생겼는가에 대해 예전부터 생각해 온 바, (엄밀히 말하면 남녀가 말하는 '사귄다' 라는 개념의 존재 이유에 대한 생각의 연장선이다.) 사유 재산이란 개념이 생겨난 유래와 결혼이란 제도가 생겨난 이유는 종국적으로 그 속성이 같을런지도 모른다는 추론에 이르렀다. 자신이 소유하는 농경지와 다른 이의 경작지 사이에 울타리를 두르듯, 인간이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해 확실히 구분 지으려는 속성이 있고 더불어 그런 소유물에 대
일단 이케가미 아키라가 누군지 짚고 넘어가야 할 듯 싶다. 우리나라에 손석희가 있다면 일본에는 이케가미 아키라 (池上 彰)가 있다 정도로 비유하면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잘 와 닿을 듯 싶다. 과거 정치, 시사, 국제정세 등에 무관심한 일본 국민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일본 사회는 버블 붕괴라는 커다란 터닝 포인트를 맞았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